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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회의 전화번호를 알..by 박철수 at 11/21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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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을 보내며 여름을 맞이하기까지 아키꼬 할머니와 종종 통화도 하고 한결 가까운 사이가 되고 있다. 지난 겨울 할머니와의 기억은 뜨끈하다 못해 뜨겁던 아랫목의 기억이라면 올 여름을 맞이하며 시작된 기억은 잔치국수와 함께 에미꼬 할머니와의 만남이다. 에미꼬 할머니는 첫 만남부터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도 참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고 말투와 여러가지로 외할머니가 자꾸 떠올라 가슴 저기가 저며왔다. 나의 요코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단순히 일본인처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근대사의 전쟁에 의해 이주해야만 했던 그녀들 또 그러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왔던 사적인 기억들 그것들을 추적하고 듣는 연습을 하는 시도라면 나는 일단 가장 가까운 내 주변의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지난해 할머니는 뼈가 부러지셔 수술대에 오르셨다가 현재까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계시다. 입원하시던 날 할머니를 뵈러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얼마나 더 큰 후회를 하고 있을까. 우리 외할머니는 전쟁 때 모든 친정식구들은 북에 둔 채 남편하나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신 피난민이다. 그냥 여기까지라면 아프지만 그래도 평범한 이주사를 갖고 계신 분일 수 있겠다. 그러나 50년대 중반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지셨고, (우리 어머니가 54년생 이시기에 전쟁중 이별했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결국 80년대 이산가족찾기를 통해 다시 만나셨다. 엄밀히 따지자면 할머니의 이주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또 한번의 이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오셨다. 물론 현재까지도 가족들은 그 시기 동안 할아버지께서 일본에 계셨다더라 정도만 알고있고 정확히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사실 그렇게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 듯 하다. 북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홀연듯 없어지고 전쟁후 고모는 바로 월북하신 가족사를 갖고 있는 어린시절의 엄마와 삼촌 세대는 그닥 편치 않을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 뻔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자세한 것을 들추어내서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 물론 내 세대의 형제들은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한데 나는 뭐 가족들에게 절대 애정이 있어서는 아니고ㅠㅜ 개인의 정치 이념적 성향과 국가 정체성의 괴리로 인해 개개인들의 수많은 상처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족에게도 있는 것으로 유추되면서 언젠가부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실로 궁금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할아버지의 히스토리로 자체보다는 그로 인하여 할머니가 겪었던 상처와 기억들을 어떤방식으로 재현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고민이 본격적으로 깊이 들어가기도 전에 할머니는 내게 더이상 어떤 이야기도 들려주실 수 없게 되었다. 뭐 이것과는 별개로 첫외손녀라는 점때문에 할머니는 나를 무지 아끼셨고 나도 할머니에게 짠한 어떤 감정이 있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눈물이 계속 난다. (6년전 작업의 모델이 되어주셨던 나의 외할머니) 휴. 여하튼 에미꼬 할머니는 게다가 현재 인천에 살고 계신다. 인천은 나의 고향이고 우리 외할머니의 제2의 고향이다. 에미꼬 할머니는 현재 돌봐줄 마땅한 자식이 없어 나자렛원에 가시는 것을 고민하고 계신다. ![]() 근데 내가 나자렛원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처럼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나자렛원에 대한 감정이 그닥 편하지만은 않은 듯 느껴진다. 물론 나자렛원이 현재까지 해온 노고를 절대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고민이 많으셔서 한 번 직접 가셔서 보고오고 싶으신데 경비도 부담이신듯 하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마음이 편치않다. 일년에 한번쯤은 불쑥 가고싶어하는 경주에 다음번에는 에미꼬 할머니와 함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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